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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바람

또 봄은 오고 본문

하루

또 봄은 오고

chippy 2019. 3. 19. 22:24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영하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낮엔 거의 영상을 유지하는 편이라 해만 나면 봄날 같다. 나무도, 잔디도, 어디를 둘러봐도 초록은 아직이지만...그래도 뒷마당 화초의 움도 올라와 있는 걸 보면 크로커스 같은 앉은 뱅이 꽃들이 피는 것도 금방이다. 여기서 초록은 귀하다. 쉬이 오지 않고 기다림이 한정 없어 지쳐 지쳐...하아...탄식이 나올 때나 되어야 겨우내 쌓였던 눈과 얼음이 녹는다. 나무도 벌거 벗은 채로 얼마나 힘들까...초록 잎이 나자면 눈이 녹고도 한참이다. 꽃 부터 피는 나무들은 꽃이 떨어져야 초록 이파리가 달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잠깐이다. 이제 꽃망울이 돋네...하고 잠깐 잊은 사이 꽃이 피고, 또 잠깐 사이 꽃이 지며 초록으로 변한다. 그 잠깐을 왜 그리 쉽게 놓치느냐 하면...내가 마음을 놓고 안심하기 때문이다. 이제 꽃이 피네, 날이 따뜻하네, 텃밭에 뭐라도 심어야지, 등등...기다림을 놓고 안심하는 사이 드라마틱한 시간은 “잠깐”만에 지나가 버린다.



인생, 돌아보면 잠깐 눈 돌릴 사이라고...모든 게 그렇다. 안심하거나, 잊거나, 충격이나 슬픔에 빠지거나...고통과 아픔이 전부이면 돌아 보기도 싫을 만큼 지긋지긋 할텐데...그렇다 해도 인간인 이상 그 안에서 또 잠시 숨 돌릴 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한 때, 한 순간, 한 시절...그것만 있어도 위로가 될만하다. 되돌이 하며 위무하는 게 아니라, 그만해도 살만 했지...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아서 그렇다. 인생 고해라 해도 예쁘게 칠해 놓고 숨겨 두고 아껴 보는 추억 한 가지 쯤은 다 가지고 있을 터이다. 마음의 위안이라는 것,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한 자락 의지할 무엇, 순간, 사람, 기억...소소하고 흘려 버려도 그만인 그런 행복...많으면 좋겠지만...우리의 뇌가 많이 기억할 능력이 안 된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를 먹을 수록...그래서 하나만 있어도 모자라지 않다. 



그 잠깐 사이 봄이 무르익고, 나무가 초록 잎을 달고, 화단에 꽃들이 연이어 피어 난다. 해마다 봄은 그렇게 오고, 지나가고, 여름을 맞는다. 그리운 사람들, 지금은 없는 사람들...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그리워서 떠오르는 건지, 이제 여기에 없어서 그런건지...있으면 그냥 당연하게 생각난다 하겠지, 그러니 이것도 여기 있음과 없음에 상관없이 그냥 생각나는 것이구나. 갈수록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애틋하고 애잔해 지는 것도 내가 나이 먹고 늙어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아마 40대 들면서 부터 일게다. 늙고 죽는다는 사실이 그냥 사실이 아니라 현실로 피부에 와닿기 시작하면 간단한 이별도 더 먼 끝까지 더듬어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사람 사는 일이 그렇지 않은가, 또 보자, 또 만나자 하지만 갈수록 쉽지 않다. 달리 보면 젊건 어리건 언제 어찌 될지 모르기는 매 한 가지이나 내 몸이, 상황이 더 젊어지고 좋아지지 않는다는 현실 앞에서는 그저 이번이 마지막인양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떠남에 눈물이 어리지 않을 때가 없다. 목이 메이고, 눈앞이 흐려지지만 꾹꾹 누르며 보이지 않으려 애 쓴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애 써 볼 생각이다. 마음은 그렇지만...그것도 마음처럼 할 수 없을 때가 머지 않았다. 



할매가 오래 사셨다. 그 많은 형제, 자매들, 동기간 다 보내고 우리 부모님 보내고도 6년인가...그 사이 매달 안부 전화를 드렸었다. 해봐야 한 달에 한 두번인데, 항상 반갑게 받으시고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으셨다. 내게 하는 말은 늘 같았다. 비가 오면 이곳에도 비가 오지 않는지, 추우면 춥지 않는지, 그리고 나면 “네 아버지 보고 싶어 못 살겠다.”며 울먹이시고, 무슨 꿈을 꾸었는데 어떻고, 누가 뭘 어쩐다는데 어떻고...”아이고, 할매, 괜한 걱정이지, 괜찮다.” 그러면 “그래, 맞다. 니 말 들으니 아무 것도 아이구만. 하하..” 하루 종일 그리움이 깊어 생긴 두통과 열에 시달리며 혼자 있는 집에 말 한 마디 걸어오는 사람이 없고, 집 옆 길에도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그런 세월이었다. 그래도 죽는 일은 두려운 일, 무서운 일이라...겁 난다, 무섭다 하셨다. 마지막 통화 때는 처음으로 말소리가 떨리셨다. 그때 이미 기력이 다 하신 거였다. 아흔 다섯 해를 사는 일이 얼마나 길고 고단했을까...살아야 하니 살았을 뿐이라 하지만, 내 부모님과 할매의 가는 길, 마지막을 되돌아 볼 때 마다 그 “산 목숨이니 살아야” 하는 그 시간이 내게 닥치면 바라봤던 것과 얼마나 다를지 모른다. 나는 가슴 아팠고, 대부분 어쩔 수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지만, 과연 내 자신에게도 그런 마음이 될까? 하긴...나라고 뭘 어찌 할 수 있을까. 



가끔 그립다. “지야가?” 내 이름 끝자만 붙여서 그렇게 부르곤 하셨다. 아버지도, 할매도, 엄마도...봄은 다시 오고, 떠난 사람은 오지 않고 기억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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