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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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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준비

chippy 2019. 6. 15. 11:51

우리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 부터 유언장을 작성해 두고, 또 그 내용을 가족들에게 알려 두었다. 물론 아이에게도 자세하게, 가령 부모가 갑자기 둘 다 사망하는 경우에 누가 후견인이 되고 재산은 어떻게 관리되는지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생명 보험, 종신 보험도 갖고 있고, 유언장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가장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 일이다. 그런 일이 안 일어 나겠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만... 일어 난다면 없을 경우 엄청난 불이익과 고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 “준비”해서 막거나 대처할만한 일은 거의 없다. 준비는 어디까지나 예상, 혹은 상상에 대한 대비이거나, 아니면 그저 살면서 쌓이는 지식과 경험의 산물로 현재의 나, 나의 능력이 준비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직면하면 사실 “준비” 보다는 경험과 능력치에 따라 얼마나 대처하고 받아 들이며 진행해 나가느냐만 남는다. 특히 “마음의 준비”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것은 주로 만남과 이별, 인간 관계의 시작과 끝에 관련된 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끝없이 사랑하고 이별하며 고통 받고 눈물 흘려야 하는 일에 준비란...그저 받아 들이고 살 뿐, 그러다 무뎌지겠으나...그렇다고 혼자 감당할 슬픔과 눈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래서 “준비” 보다는 “대처”와 “적응”에 더 신경을 쓴다. 준비된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인생에 거의 없다. 언제나 예고 없이, 예상을 빗나가거나 간단히 비웃으며 그렇게 찾아 온다. 처음엔 시간이 가면 무뎌지고 잊혀질 거라 믿었다. 그것도 어느 정도 연륜이 되는 나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나고 보니 알겠더라. 젊은 시절의 많은 부분을 나는 이해 못 한, 해결 되지 않은 시간과 상처를 세세히 분해하고 분석하는데 할애해야만 했다. 그것이 그저 시간 낭비만은 아니었다. 내 과거의 정의 없이 다음으로 넘어가는 일은 불가능했다. 상처는 흉터로 남아 여전히 기억에 있지만 고통은 지나갔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가 아니라 나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뎌지고 잊혀지는 것이 때로 반갑다가도...더 자주 “아니지, 그러면 안되지” 라는 생각을 한다. 좋은 게 좋지, 싫은 소리 해봐야 누가 좋아 한다고, 나만 좀 참으면 되지...하다가도 가끔 버럭질도 하고, 굳이 싫은 소리, 뒤돌아 남의 흉도 본다. 물론 남의 흉이나 욕을 할 때는 전혀 모르는 제 3자에게만 하거나, 둘 다 공모?가 가능한 내부자와만 한다. 그래야 뒷말이 없으므로. 내게 해가 돌아 온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한 번 내지른 후에 바로 잊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매번 누구를 흉 보거나 씹을 일도 없다. 이젠 그만한 에너지나 열정이 생겨나지 않는다. 싸움도, 흉도, 뒷담화도 파이팅이 있어야 가능한데...ㅎ...이게 없어진지 오래이다.  한편으로는 서글프지만...어쩌리오...갈수록 유리? 가슴이 되어 가는 것을. 

 

정확히는 피해 다니는 게 맞다. 준비 보다는 이게 더 안전하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듯, 준비가 귀찮아서 안 하는 게 아니다. 피해서, 안 보고 안 들어서 내 마음이 편한 일이라면, 그리고 그게 내가 선택해서 가능하고 누가 뭐라 할 일도 아니라면 그렇게 한다. 물론 나 편하고 좋자고 하는 일이다. 굳이 안 해도 될 말, 굳이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는 말을 하고, 또 별 반성이나 거리낌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처럼 피해 다니는 사람이 그래도 낫다, 내 선택이 맞다고 느낀다. 그런 사람들이 다 알만하고 그 정도는 가려 할만한 사람들인 경우엔 특히 더 그렇다. 비판과 비난, 냉소와 무지의 경계와 구분이 갈수록 모호해진다. 그것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생각하고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 각자는 굉장히 진지하고 열심히 일하고 산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리라 믿는다. 다만, 그게 함정이고 약점이란 것도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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